2013.11.27 15:20

조룡대와 백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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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먼저 덕물도(德物島)에서 신라장군과 약속하기를 칠월 십일 백제도성

가까이 가서 두 나라의 군사를 합하여 의자왕이 있는 부여성을 함락시키자는 단단한 밀약을 하고 소정방이는 수륙군 십삼만 명을 거느리고 길을 재촉하여 지금 안면도(安眠島)부근을 지나 기벌포 어귀에 들어서서 백제 서울에서 머지않은 「불암나루」에 진을 치고 신라에서 오는 정보와 소식을 탐문하였으나 도무지 아무런 통보가 없다가 기일보다 하루 늦게 신라 장군 김유신이 당장(唐將) 소정방의 군문에 당도하였다。

 

소정방은 노발대발하고 군법으로 독군(督軍) 김문영(金文潁)을 베겠다는 말까지 하였다。사실은 백제명장 계백(꜐伯)의 오천 명 군사에게 신라 오만 명이 단단히 욕을 보고 약속한 날짜 안으로 온다는 것이 이리 늦은  것 이었다。

 

약조한 기일을 어김으로 군법시행을 한다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나 도중에서 강한 백제군사를 만나 이같이 늦은 것도 참작할 여지가 있음을 김유신장군은 누누이 소정방에게 말하였으나 도무지 들어줄 것같이 않았다。

 

그리하여 김장군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머리털이 바늘처럼 일어나서 참을 수 없는 심경이었다。곧 신라군진에 영을 내리기를「우리가 도중에서 백제군과 접전을 하고 갖은 고초를 겪어가며 약조한 날짜에 이곳에 오느라고 무한히 애를 썼음은 모든 장군들도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와서 그 전후사실을 소정방이 놈에게 말을 하였으나 기일을 어기었다는 말만 앞을 세우니 "이리하고서야 어찌 합심하여 백제나라를 치겠오。내가 백제서울을 쳐서 없애기 보다 먼저 당나라장군 소정방 놈의 목을 베어버리는 것이 옳지 않소?" 하고 찾던 칼을 뺐다 꽂았다 하며 분한 기운을 참지 못하였다。

 

모든 장수와 군사들도 그런 사정모르는 당나라 되놈하고 맘을 같이하여 싸울 수 없다는 불평의 소리가 높아졌다。

소정방이 김유신에게 군법을 시행하겠다는 말을 하고나서 얼마 안 되어 군사 한사람으로부터 이런 보도가 들어왔다。

「지금 신라군중에는 긴장한 빛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병기를 모두 간수하고 대오(隊伍)를 정제하고 있소。」 이 말을 들은 소정방은 급히 아장(대장 다음가는 사람)을 신라 군문에 보내어 김유신 장군을 급히 청하였다。

 

김장군이 청하는 소정방에게 가서 본즉 소정방이는 앞서 말한 것이 잘못되었으니 과히 노하지 말고 우리가 처음 목적하였던 백제서울이나 칠 계획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 말에 김유신도 노한 마음을 얼마쯤 풀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두 장군은 백제서울을 치는 작전계획에 합의를 보아 육로로 지금 후성(后城)을 지나 숫골을 거처 부영에 오는 군사는 김유신이가 맡게 되고 수로로 사자강(금강)을 거슬러서 부여로 들어가는 것은 소정방이가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정방이는 배를 타고 군사를 가득 실은 배들을 이끌고 부여로 오는 도중 반조원

(〓世道面)에서 일단 상륙을 하여 당 고종(高宗)의 조서를 군중에 선포하며 또 두서너 가지의 주의할 것을 군중에 명령하였다。

「너희들은 본국을 떠나 이곳에 오기까지 여러 달 동안 갖은 고초를 겪었다。너희들은 백제서울에 가서 특별히 주의할 것은 노략질을 너무 많이 하지 말 것과 양민에게 의(義)아닌 짓을 하여서는 단연코 친 불친(不親)을 물을 것 없이 죽일 터이다。」

이렇게 군중에 명령하고 나서 배에 올라 십여 리를 부여 쪽으로 왔었다。

 

때마침 만조(滿朝)가 되어 강물이 판판하여졌으나 얼마 아니하여 퇴조(退朝---썰물)시각이 되니 물은 점점 오던 길로 내려 몰리고 보니 군사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배를 젓기 시작하였다。해는 점점 기울어지는데 때마침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하며 마침내 사석이 날리고 하늘에는 먹장 같은 검은 구름이 떠돌며 뇌성벽력이 굵은 빗방울과 함께 우르릉대었다。

 

소정방 군사들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눈을 감고 있는 힘을 다하여 배를 저어보았으나 물 빠지는 수세(水勢)에 배는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었다。

군사들이 기진맥진하여 대장부터 무슨 분부가 내리기만 기다리고 그저 배만 저었다。

이러기를 5,6시간하고 나니 싸울 용기는 다 사라지고 목숨 살길을 꾀하게 되었다。

 

소정방이는 아무리 군사들을 독려하였으나 인력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었다。한편 천기가 회복 되기를 바랐으나 갈수록 점점 풍우뢰성(風雨雷聲)이 심할 뿐이요 그치지를 아니하였다。그리하여 부근에 임시로 군사를 상륙시켜놓고 부근의 노인들을 불러『너의 나라에는 풍우가 이같이 자주 있느냐?』고 물었더니『그런 일 없소 우리나라는 사시를 통하여 하늘이 맑은 날이 많고 이런 천기는 처음이요』라는 대답 이었다。

 

소정방이가 다시 묻기를『그러면 어찌하여 오늘은 이리 일기가 사나우냐?』하니 늙은 사람

하나가 말하기를『다름이 아니요 백제나라님은 필시 용의 자손(무왕이 용의 아드님)으로 낮에는 사람이 되시어서 우리나라 정치를 하시고 밤이면 용이 되시여 부소산 북쪽에 있는 수궁(水宮)에 계시는데 이 근래에는 밤낮 할 것 없이 수궁에만 계시다가 오늘 서울이 함락되게 되니까 수궁에서 나라님이 조화를 일으켜서 이리 날씨가 나쁜 것이요』하였다。

 

다른 한 노인이 또 말하기를『우리서울을 지키고 있는 장수 중에 일천(天一)이라는 장군은 조화가 무쌍하여서 능히 앉아서 바람을 부르기도 하고 비를 이루기도 합니다。또 용이 되어 물속에만 들어가면 별 변화를 일으킵니다. 요새는 수중에 있어서 육지에는 나오지 않다가 오늘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알고 변화를 부려 이리된 것 같읍니다。』라고 말하니 소정방이는 다시 묻기를 『이 용들의 먹는 것은 무엇이냐?』하니 중늙은이 되는 한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되어 있을 때 는 백마(白馬)고기를 제일 좋아하오」하였다。

 

소정방이는 곧 백제사람으로도 고기잡이사람으로 옷을 갈아입고 군중에서 백마 한필을 잡아 머리를 떼어 가지고 곧 용이 산다는 바위로 올라가서 백마머리를 낚시에 물려가지고 시퍼런 물속에 철석 집어넣었다。

 

얼마 안가서 낚시 줄이 건등거리며 그 줄이 점점 팽팽하여졌다。

소정방은 바위에 무릎을 꿇고 다리와 팔에 힘을 단단히 주어 확실히 용이 낚시를 삼긴 듯한

그 찰나에 힘을 다하여 낚시대를 하늘로 채었다。

물속에서 낚여 나온 용이 사지와 전신을 꿈틀거릴 때마다 황금빛을 번쩍거리었다.

 

소정방은 낚시 끝에 달린 용이 무거워 용이 다시 물속에 내려가려 할 때에 힘을 모아 다시 채니 황용(黃龍)은 공중에 높이 떠서 동편으로 향하여 별똥같이 가다가 철석하고 용전(龍田〓扶餘面龍 井面를 龍田이라고도 함)에서 떨어졌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난데없는 큰 물건이 하늘에서 떨어지는지라 감히 가까이 가보지는 못하고 그 후 며칠 지나 동내사람들이 일시에 몰려서 가보니 생각지도 않던 큰 용이 떨어져 썩어있었다。그 썩은 냄새는 코를 찔러 더 볼 수 없게 되었다。

서편바람이 불면 그 용 썩는 냄새가 팔십여 리 밖의 공주 구르내(錦川)까지 갔다한다。

 

소정방이가 용 한 마리를 낚아낸 후에도 여전히 비바람과 뇌성벽력이 그치지를 않고 보니 다시 군중에 돌아와서 먼저 말하던 노인을 불러들였다。

둘째 번에 말하던 노인이 말하기를「천일이라는 사람은 내외가 모두 조화 부릴 줄 알아서 먼저 숫용을 잡아 냈지만 암용이 자기남편 숫용을 죽였으므로 날이 개이지를 않는 것이요」하였다。

 

소정방은 이 말을 듣자 곧 군중에 명령하여 흰 소금과 독약 천석씩을 징발하고 자색(紫色)실로 뜬 그물을 가지고 역시 조용대 위 범바위 근처에 가서 흰 소금과 독약을 풀게 하며 자색그물을 치게 하고 밑으로 내려와서 엿바위(窺岩)근방에 강물을 걸터 막았다。

 

물속에 있던 암용은 별안간 짠 소금과 독약기운에 숨이 막히고 사지가 마음대로 놀려지지

아니함을 알고 급히 사람으로 변하야 범바위 위로 달아나는 것을 당나라군사 수백 명이 쫓아가서 잡아 죽였다。

 

이와 같이 자웅(雌雄)의 두용을 없앤 후에 하늘이 개이며 일기가 맑아져서 소정방은 백제서울에 이르러 궁궐 안의 모든 보배를 마음껏 가져가기도 하고 아름다운 궁녀를 능욕도 하였다고한다。 

지금 조룡대에는 소정방이가 용을 잡느라고 무릎 꿇었던 자국이 있고 용 낚는 줄에 훌쳐서 바위가 패인 자국이 있다。

또 백마강 이름도 이때부터 비롯하였다고 한다。

(이 조룡대를「삼국유사」에서는 「용암」(龍岩)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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