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2 08:59

부산(浮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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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는 백제의 전성기에 산신이 살았다는 오산(烏山),일산(日山),부산(浮山)의 삼산(三山)이 있는데 백마강가에 있는 부산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백마강의 맑은 물에 그 모습을 비치고 있는 부산은 현재는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의 강변에 홀로 우뚝 솟아 있으나, 원래는 백마강의 상류 충청북도 청주골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백제 중홍의 기틀을 세우려고 성왕이 서울을 웅진으로부터 사비(소부리=부여)로 옮겨 가자, 이 때 웅진 곰나루의 깊은 물속에 살고 있던 용들은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것은 성왕(聖王)이 사비로 서울을 옮기면서 자기들 용신에게 미리 고하지 않았다는데 대한 불만이었다.

64년간이나 서울 웅진을 지켜온 용신들을 너무 무시한 처사라 노할만도 했었다. 용신들은 상의한 끝에 심술을 부리기로 작정했다.

백제의 하늘은 당장에 시커먼 먹구름으로 가려지고 연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억수 같이 퍼붓는 비가 석달간이나 계속되자, 강변의 마을은 물론 사비성 주변은 온통 물바다로 변하여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나는 듯 백성들의 마음을 공포속에 몰아 넣었다.

이 때 백마강의 상류 청주골에는 왕족에 속하는 한 성주가 있었는데, 그 곳 성주는 집 앞의 강가에 우뚝 솟아 조석으로 대하는 이 산을 지극히 위하여 왔었다. 그 까닭은 산이 아름다워서 그렇다기 보다는 그 산에는 이 고을을 수호하는 산신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때의 산신은 몇 달 계속되는 비에 그만 질려버려서 산속의 바위에 숨어 들어가, 동면이라도 하듯 깊이 잠들어 버렸다.

그런데 때마침 폭포수처럼 내려 쏟아지는 호우로 말미암아 쏜살같이 된 급류가 그 산에 밀어닥쳤다. 산은 그만 둥둥 떠서 금강에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때가 한밤중이라 산 앞에 사는 성주도, 그리고 산속 바위 깊숙이 잠들어 있는 산신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물에 뜨고, 물에 밀린 산은 마치 큰 배가 떠가는 듯 금강의 하류로 밤새도록 떠내려갔다.

밤새 금강에 떠내려오던 부산은 새벽녘, 백제 성왕이 새 왕성을 만드는 역사가 한창이던 사비성의 부근 호암리(虎岩里) 앞에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호암리에는 호녀(虎女)라 불리는 한 아낙네가 살고 있었다. 이 아낙네의 이름이 호녀가 된 것은 얼굴의 생김새가 호랑이 상인데다가 그 목소리가 몹시 커서 한번 소리라도 지르면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듯 산천이 쩡쩡 울릴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마침 이 호녀가 이날따라 일찍 일어나 집 앞에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그 눈 앞에 큼직한 산이 둥둥 떠내려오지 않는가. 깜짝 놀란 호녀는 "앗! 저것봐 산이 떠내려오네, 산이 떠내려와!" 호녀는 이 놀라운 광경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더욱 큰 목소리로 "모두 나와서 저것 봐요! 산이 떠내려와요, 산이!" 하고 소리쳤다.

평시에도 목소리가 큰 호녀가 이 때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리 질렀으니 얼마나 사방이 진동했을까.

강물속에서 비를 내리게 했던 용신이 그와 상극인 호랑이의 소리에 놀라 그만 비를 그치게 했는가 하면, 떠내려가던 산 속에서 잠자고 있던 산신도 잠을 깨자, 그 순간 산은 그 자리에 멈추어 가라앉아 버렸다.

한편 청주골의 성주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집 앞에 있던 산이 온데 간데 없이 안 보이므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엇다. 그는 곧 부하를 시켜 산이 간 곳을 찾게 하였다.

그러자 며칠후 기별이 오기를 산이 떠내려가다 사비성 부근에서 가라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성주는 얼른 사비성의 성왕을 찾아가 이 산이 본시 청주골에 있었던 것임을 알리고 되돌려 줄 것을 요청했다.

왕은 빙그레 웃으며

"그 산이 그대의 유실물이라면 좋소. 끌고 가 제자리에 갖다 놓도록 하시오."
하고 분부하였다. 그러나 왕은 속으로는 왕성의 미관과 그리고 서쪽의 허술한 수도 방비상, 이 산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을 은근히 바라는 것이엇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산이 그 자리에 멈추고 있음으로해서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금성산을 가운데 끼고 동쪽에는 오산 그리고 서쪽에는 이 산이 같은 거리와 방향으로 있어 마치 절의 불상이 좌우에 협시불을 거느린 격이되어 잘 어울리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산의 산신이 어떻게 마음 먹는가에 달려있는 것이었다.

청주골의 성주는 성왕의 허락을 얻은 다음 곧장 백마강변의 규암면 진변리에 가라앉아 있는 산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산의 산신을 보고 다시 청주골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이 때 성주는 산신이 두말없이 선뜻 응해 줄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산은 다시 청주로 간다고 하지를 않고 그대로 눌러 앉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 산이 임자인 산신은 처음엔 돌아가려고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청주골에 있을 때 보다 심심치 않고 매우 좋았다.
즉, 이 곳에는 자기와 비슷한 두 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십년을 사귀어 온 친구와 같이 마음과 뜻이 통하는 일산과 오산을 벗 삼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재미가 있어 그 동안 며칠 사이에 몹시 마음이 끌리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에 청주골로 다시 떠나려고 마음 먹었을 때 금성산과 오산이 "하필이면 그런 시골 산골에 다시 돌아가 살려고 합니까? 이것도 인연이니 여기서 주저앉아 우리 서로 재미있게 살아 봅시다." 하고 청주골로 떠나는 것을 한사코 만류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산신령은 떠나지 않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청주골 성주의 권유와 재촉을 거절하기에 이르렀다.

청주골의 성주는 본인이 싫다는데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성주는 왕의 앞에 다시 나아가 이 사실을 아뢰었다.

성왕은 이 말을 듣고 실망에 쌓인 성주가 측은하게 여겨졌음인지 "산은 이 곳에 남는다 하되 본시 청주의 산이었으니 해마다 거두는 산세는 청주에 보내도록 할 것이오"라고 위로 하였다.

이 때부터 부산(浮山)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산은 금성산 오산과 함께 의형제를 맺어 백성으로부터 〈三山〉이라 숭앙을 받았다고 한다.

화창한 봄날, 부산 산마루에서는 서로 만난 세 산신들이 바둑 두는 소리, 아니면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소리가 간혹 아랫마을까지 들려 왔었다고 한다.

그런데 또 전하여 오는 말에 의하면, 이 부산이 홍수로 떠내려올 때, 만일 호녀가 호들갑스럽게 큰소리로 외쳐 산신을 잠깨워 그 자리에 가라앉게 하지 않았던들 부산은 더욱 아레로 내려가고 백제 사비성 시대의 운명은 보다 연장되었을 것이라고 애석히 여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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