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마당


2리(里)1심(心)의 ‘대선 2리(大船二里)’


​□ 마을 유래 및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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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2리 북촌 전경


옛날에 늙은 선녀가 말을 타고 이곳에 와서 말을 멈추어 두고 노고산으로 올라가서 그 산에 사는 늙은 선녀와 놀았다 하며 그 말을 멈추게 하였다는 마가산(馬駕山)을 남쪽에 두고 북쪽으로는 조선시대만 하여도 큰 배가 드나들었다는 금천을 북쪽에 두고 넓은 들에 대선리는 자리한다.고려 때는 홍산현에 속했으며 조선시대 초기에도 홍산현 남면의 지역이었다. 금천이 자주 범람하여 개간을 생각지도 못했으나 고려 말기에 연안이씨와 한산이씨들이 넓은 들을 남쪽부터 개간하여 들녘에 마을을 형성해 갔으며 이어 경주최씨와 인동장씨의 정착으로 큰 마을로 변해갔다.조선시대 말기에는 홍산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배처럼 생긴 바위가 있으므로 배아구, 바이아위 또는 바야위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대선리라 하고 부여군 남면에 편입됐다. 리의 면적은 1.80㎢이다.
북촌마을 일대는 선사 취락지로 추정되며 마제석검, 석촉, 무문토기 등이 발견되는 등 발굴된 지역이다.

□ 삽교 – 신교비 
11월11일! ‘1’이 네 개니 무슨 특별한 날인 것 같다. 역사적인 것을 뺀 이 날은 ‘농업인의 날’ 이면서 2006년 행사에서 ‘가래떡 데이’로 지정해 이후 계속 가래떡 데이로 자리를 잡아 왔다.
이날 유난히 희뿌연 한 날씨(미세먼지)로 인해 바깥 활동이 어려웠지만, 대선리를 탐방하는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부여읍을 출발해 4차선도로를 타고 홍산소재지 부근 홍산교차로에서 우측으로 빠진 후 좌측 남면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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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름은 신교이고 현재는 삽교다
 

교차로에서 직선의 2차선 도로를 1.7km 내리 달리면 대선리의 첫 관문인 125m 길이의 ‘삽교’가 나온다. 금천(金川)천을 가로지른 삽교의 원래 이름은 ‘신교(薪橋)’라는 섶다리이다. 처음엔 나무로 엮어 만들었다가 후에 돌다리로 고쳐 세웠을 것이란 추측이다. 효종7년(1676년) 금천에 세운 이 다리는 홍산현과 임천군, 즉 ‘영유역’과 ‘숙홍역’의 도로를 연결하는 큰 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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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리 방향 ​삽교 옆 가드레일 안쪽에 신교비가 서 있다


신교의 흔적은 사라지고 대선리 방향 다리 끝자락에 ‘신교비’가 다리의 역사를 말해 준다. 이 비문에는 당시 이 다리 조영에 관여한 50여명 인사가 품계와 직책별로 새겨져 있다. 당시 홍산면, 남면 일대의 군(軍), 관(官), 민(民), 승(僧) 등 각계각층에서 활동한 인물사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담겨있다. 관직도 가선대부, 통정, 별장, 사과, 호군, 만호, 주부, 한량은 물론 여성으로 추정되는 상화(尙華), 귀화(歸化), 예덕(禮德)도 보이며 불가의 월천공덕(越川功德)을 실천하는 시주, 공양승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조영에 참가한 석수(石手)의 이름이 선명한데 바로 석수 주만기(朱萬紀)이다. 여기서 1km 상류 쪽엔 신교 건립 이듬해인 1657년에 세워진 ‘금천교(金川橋)’가 있으며 홍산관아에는 숙종때 세운 ‘만덕교(萬德橋)’가 있어 홍산을 중심으로 한 당시의 교통망 발달도 가늠할 수 있다.(부여역사문화연구회 이진현님 제공)


이런 중요한 기록을 담고 있는 비가 다리 옆 가드레일에 안쪽으로 배치돼 있어 언뜻 보면 별 가치 없는 비로밖에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 비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해 그에 따른 후속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주도로를 연결하다 보니 다리와 관련한 이야기도 풍성하다.
다리의 유래를 오래전에는 돈 많은 사람이 인부를 고용해 삽을 가지고 다리를 놓았다고 해 ‘삽교’라 전해지기도 한다. 이후 다리를 돌과 나무 등으로 만들어 구조적으로 협소하고 무게의 지탱이 약해 우마나 차량이 전복돼 사람이 죽는 사고가 잇따랐다. 이를 막고자 마을에서는 굿 등 무속신앙에 의지해 무사안일을 기원했다.


또 다리의 대선리 방향에는 주막이 있었다. 홍산장을 가기 위한 외길의 이 다리에 있는 주막은 대선리 주민에게는 고난과 농심의 피로를 달래주던 곳이기도 했다.  
한편 충화에서 도깨비불이 날아올라 이곳 다리 근처에서 사라지곤 했는데 그럴 때면 3·4일 후 충화에서 여지없이 사람이 죽어 나갔다고 한다(한상봉 이장 말씀).
마을의 관문인 삽교에서 글이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 보뜰 - 바야위 대선마을 표지석 – 대두랭이 - 장홍순식품공장 - 구정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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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리 본 마을 진입로에 서 있는 표지석이다


삽교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뒤로하고 가다 보니 서부여농협 양곡창고 앞에 ‘바야위 대선마을’과 ‘대선교회’ 표지석이 나란히 있어 본 마을의 입구임을 알려주고 있다. 삽교에서 이곳까지 ‘보뜰’이라는 지명이고 이 구간의 도로 부분 ‘홍안뜰’이라 한다.
표지석 앞 2차선 도로에서 오른쪽 길로 진입해 들어가다 보면 오른쪽 야트막한 언덕에 폐공장이 있다. 과거 이곳은 대표적인 유명 식품인 ‘못난이수제비’를 생산해 대선리 경제의 젖줄을 담당했던 ‘장홍순식품공장’이다. 장홍순은 설립자 인명으로 이따 가볼 대선교회의 6대 이기웅 목사 부인이다. 현재 설립자와 남편은 고인이 됐고 자제는 이곳 공장 터의 협소한 관계로 청양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표지석에서 이 공장까지의 주변을 ‘대두랭이’라 부른다.

여기서 조금 오르면 ‘구정절’이라는 절터가 나오는데 현재는 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구정절에 얽힌 얘기가 있다(한상봉 이장 말씀). 일제 강점기 당시 이 근처에 아주 큰 구덩이를 파 놓고 반일 감정이 있는 부여와 서천 주민의 일부를 학살하려 했다고 한다. 해방이 불과 하루만 늦었어도 많은 사람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거란다. 당시 학살은 자행됐던 게 사실인데 한적한 이곳에서도 발생할 뻔했던 게 끔찍스럽다. 다시는 국난과 나라의 뺏기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을 말해 주는 곳이기도 했다.

□ 골밭 – 괭이 – 뱃고개 – 주엽나무(재깐나무) – 송신탑 - 대선성결교회
소름을 뒤로하고 기괴로 넘어간다.
기괴로 넘어가기 전 언덕과 언덕 사이의 도로 우측 가라앉은 부분이 ‘골밭’이라고 부르고 골밭에서 ‘서천공주고속도로(이하 고속도로)’ 방향으로 ‘괭이’라는 지명이 있고 이곳에서 더 고속도로 방향으로 가면 ‘뱃고개’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옛 이름을 뒤로 한 채 모두 경지정리를 해 흔적도 없다. 
쭉 오르다 오른쪽 도로로 빠져 야간의 오르막을 거쳐 언덕에 다다르면 괴상한 자태의 나무 한 그루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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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엽나무다.(일명 재깐나무)

이 나무는 가시없는 ‘주엽나무’인데 100여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전부터 주민들은 ‘재깐나무’라는 별칭을 사용해 왔지만, 이름의 유래는 찾아볼 수 없다. 나이 탓에 고목의 진행이 빨리 돼 생명이 다해가고 있어 안타까움은 더해지고 있다. 생명 연장을 갈망하는 이 나무는 사람의 지혜를 기다리고 있다.
 이 근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주민들의 쉼터로서의 정자나무 역할을 한다. 이곳을 잠깐 머무르는 데 웬 강아지 한 마리가 동네 떠나가듯 요란하게 짖는다. 손님(본지 기자)을 불청객(도둑)으로 오인해 못마땅한가 보다. 그래도 멀찍이서 거리를 두고 오지는 않는다. 그러잖아도 방문 며칠 전 마을에 곡식을 훔치려 도둑이 들었단다. 이 강아지가 그때 나타나 도둑에게 혼쭐을 냈으면 좋았으련만! 
이 기괴한 나무 바로 옆에는 상당히 높은 송신탑이 뿌연 하늘을 맑게 해달라고 푹푹 찌르고 있다.

이 나무에서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언덕 위에 난 길을 따라가면 끝자락에 대선리 명물 ‘대선성결교회(목사 서종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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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성결교회에서 어린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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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성결교회가 100년이 지났음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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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성결교회의 빛바랜 사진이다(대선1리 사진 제공)

이 교회는 2016년 100주년이 됐고 초기에는 교회 본체와 아래 윗방, 작은방, 부엌 등이 있는 20여평 규모였다. 현재의 모습은 1966년 4월 교회 건축을 위해 전 교인이 2km나 되는 냇가에서 모래와 자갈을 가져와 7여년간의 공사 끝에 준공하게 됐고 이후 수차례 리모델링을 거쳤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6·25전쟁 발발 직전인 6월2일 부임한 앞서 거론한 ‘6대 故 이기웅 목사’다. 이외에도 이 목사는 부인과 함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탁아소를 운영해 농촌육아에 힘쓰고 또 배움이 적은 농촌의 현실을 감안해 농촌계몽운동도 전개했다. 이 목사는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개군 100주년을 맞아 ‘부여 100년을 빛낸 인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 매체기 – 서반체기(무량뜰) –대선리 석탑(야바위 석탑, 탑생이, 말무덤) - 바야위(배다리, 배아구(귀), 바이아위) - 북촌우물

교회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고속도로 주변이 ‘매체기’라는 지명이고 매체기에서 서쪽으로 금천천과 금천리의 경계 부분에 이르는 넓은 평야지를 ‘서반체기’라 부른다. 이 지명 안에 ‘무량뜰’이라는 이름도 있다.

이 교회에서 고속도로 굴다리로 향해 내려가면 굴다리 직전이 ‘대선리 석탑’이 있는 자리다. ‘야바위 석탑’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바야위 동네, 수로가 지나가는 외딴집 앞에 방형 석축 2단이 마치 고려 방형분과 같은 형태가 남아 있을 뿐이다. 마을 어르신에게서 들은 것을 적어 보면 “백년 내의 일이다. 임천 옥실(玉谷) 이삼봉이 선영(先塋)의 석물에 쓰기 위해서 방형으로 높이 3장여의 돌 위에 비가 서 있던 것을 다 부수어 버렸던 바, 그 뒤에 바야위 동네에는 악질이 유행하였을 뿐 아니라, 백주에 불이 나서 피해가 막심했다. 그래서 그곳에 남아있던 석재를 모아 어느 정도 원형을 갖춘 뒤로 마을에 해가 없어졌다. 지금에 있는 방형 석축이 개수 후의 탑이라고 전한다”는 것이다. 바야위 즉 배 형국의 동네 이름에서 돛대 모양을 만든 것이 혹은 이 탑을 본뜬 게 아닌가 한다. 이 주변을 탑이 있어 ‘탑생이’, 또는 탑 주변에 죽은 말을 돌로 쌓아 무덤을 만들었는데 이를 ‘말무덤’이라는 지명을 얻게 됐다.

석탑이 있는 곳에서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자마자 배의 형상과 같다 해 바야위, 배다리, 배아구(귀), 바이아위 등의 다양한 이름이 있는 바위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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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공주간 고속도로 굴다리인데 사진 찍는 이가 서 있는 방향이 대선리 석탑부근이고 굴다리를 통과하면 바야위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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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회로 올라가는 방향에서 찍은 사진인데 미루나무 ​뒷쪽이 바야위가 있는 곳이고 오른쪽 언덕을 돌아가면 대선리 석탑이 있는곳이다

(대선1리 사진 제공)

주변의 지명을 바위 명과 함께 쓰고 있고 마을이 바위의 동쪽에 위치했다 해 ‘선동마을’로 개칭됐다. 이 바위에 뾰족하게 돌출된 부분이 있어 배를 댈 때 이곳에 밧줄을 묶어 배가 정박할 수 있게 했다. 이를 볼 때 이곳까지 배가 들어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1984년 경지 정리할 당시 바위가 자동차보다 커 중장비가 매우 힘들게 작업해 매립했다. 마을의 이름을 만들어낸 바위가 경지정리한 땅속 어딘가에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당장 끄집어내 적당한 장소에 기념비적 상징으로 놓아두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마을 주민은 오죽하겠는가.

다시 교회 방향으로 굴다리를 통과해 마을 앞길을 가다 보면 밭과 논의 경계에 ‘북촌우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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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리 북촌은 철분이 나오는 데 이곳의 우물은 나오지 안는다

우물 주위의 북촌은 철분이 섞인 물이 나와 물을 이용하는 관은 철분으로 인해 막힘 현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우물은 철분이 섞인 물이 나오지 않는다. 함석지붕을 한 이 우물은 현재 사용하지 않지만, 이것저것 사라져만 가는 것이 아쉬워 마을에서 보존 차원으로 현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 한상봉 대선2리(북촌)이장  
주민들이 순박하고 때가 묻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범죄도 없다. 과거 송방(옛 가게 이름), 장홍순식품, 대선정미소, 원종찬 현 남면 면장 부친이 운영하던 원흥약방 등 생업적으로 활발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문 닫아 현재는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젠 과거 생기 넘치던 일을 취나물, 딸기 등 농작물이 자리 잡아 주민의 생업을 책임지고 있다. 이로써 부농을 꿈꾸는 주민도 생겨나 앞으로 마을이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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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어 취나물이 마을의 경제를 담당하고 있다


또 공무원, 군출신 등이 많다.
모두 열거하기 힘들지만 한다면 지희진 대통령비서실 해양수산비서관, 이재은 해군특수전 전단장(준장) 등이 있다.

 

정보제공 : 부여이슈 (윤용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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