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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읍에서 동편으로 1.5km쯤 되는 지금 사근다리 앞 로터리에서 공주(公州)와 논산(論山)방면

으로 갈리는 길 안 편으로 논들이 있는데 30년 전에는 주위 160m 되는 방죽이 있었다。

 

이 방죽에는 옛날 백제 의자왕(義慈王)시대에 이만광(異萬光)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복술(卜術)이 신기하게도 맞으므로 부근 동리에 사는 남녀들은 이만광을 신으로 알고 물건을

잃으면 만광이를 찾았고 장사를 경영하려면 만광이에게 갔었다。

 

심지어 부귀(富貴)의 길을 찾는 사람 자녀를 못 둔 사람 무슨 일을 경영하던지 미리 앞길을 알려는

사람 등 이 세상에 인간으로 욕망을 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만광이를 찾았다。

만광이의 치부(致富)의 운이 있었든지 점하러 오는 사람들의 소원대로 점을 하여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소문이 이 동리로부터 저 동리로 알려지고 이 골에서 저 골로 전파(傳播)하여 소부리

(所夫里 ―부여 서울)골에는 아이들까지도 모두 알게 되었다。

이러고 보니 만광이 집으로 점치러 오는 남녀가 매일 5,60명씩이 연락부절하여 인산인해(人山

人海)를 이루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복채(手數科)가 모이기 시작하여 생활이 점점 나아가며 해가 갈수록 논도 사고

밭도 사고 보니 몇 해 안가서 부잣집이 되었다。훌륭한 기와집도 새로 지었다。

남들이 점 잘하는 부잣집이라고 부르면 만광이 자신도 역시 이렇게 불러줌을 만족히 생각하였다。

 

이같이 국민의 정신이 타락하여 적극적 활동력을 상실하고 요행을 바라는 국가에 번영(繁榮)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웃나라 신라에서는 국민의 국가관념을 적극적으로 길러주며 국내의 실력을 양성하여 부국강병

(富國强兵)의 길로 인도하여 가는데 이웃 백제나라 임금은 나라정사에 힘을 아니 쓰고 술 마시기

와 여자를 좋아하니 백제 일반 유식계급은 국왕의 이 같은 짓을 원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 김춘추(후의 무열왕)는 고구려에 동맹을 청하여 당(唐)에 사람을 보내어 군사

응원을 청하였다。당나라에서는 13만 대군을 소정방(蘇定方)이 거느리고 백강(白江)으로 달려

들게 되었고 신라 김유신장군은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서울을 쳐 없애기로 조약이 긴밀

하였다。

 

이 두 나라의 군사가 불시에 백제 땅으로 달려드니 백제서울은 극도로 혼란하여지며 사람들은

남부여대(男負女戴 :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하고 피난할 곳을 찾으러 다녔다。

 

궁궐 안 왕과 그 가족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대신과 그 아래 신하들도 또한 어찌하면 좋을지

몰랐었다。임금님은 하는 수 없이 공주로 파천(피난을 감)한 후에 신라와 당의 병정은 부여

서울을 들어섰다。

 

먼저 왕을 잡을 목적이었으나 임금님이 안계시니 소정방은 이곳저곳으로 사람을 놓아 찾아

보았으나 가신 곳을 알지 못하였다。

하는 수 없이 정방이는 백제나라에 점 잘하는 사람이 없느냐하고 영을 내리니 어느 한사람이

「서울 동편에 사는 만광이라는 자가 복술이 용하여 무슨 일이고 물어보면 백발백중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리 고하니 정방이는 곧 군사 몇을 만광이에게 보내어 잡아 오게 하였다。소정방이는 백제궁궐

높은 자리에 앉아서  만광이에게 이같이 물었다。「네가 점이 용하다니 사실이냐? 만약에 점을

하여 너의 나라 임금님이 있는 곳을 알려주면 후한 상을 줄 것이나 그렇지 안하면 마땅히 군법으로

시행하리라」하니 만광이 대답이「소인이 무슨 점을 잘 알겠사오리까 사소한 것을 물어서 약간

맞는 것이 있으므로 점 잘한다 하오」하고 답변을 하였다。

 

소정방이는 만광이가 백제사람이요 저희 나라 왕의 거처를 물으니까 잘 알려주지 않은 줄을

미리 짐작하고 이번에는 만광이를 엎어놓고 곤장(棍杖) 5,6대를 힘껏 내려치니 만광이는 정신이

산란하여 의식이 거의 없어져버릴 지경이었다。

 

다시 정신이 나기를 기다려 소정방이는 왕의 간 곳을 반복하여 물었다。

만광이는 매에 못 이겨 하는 수 없이 점괘를 풀어보니 왕은 공주로 가신 것이 분명하므로 사실을

솔직히 소정방에게 알렸다。

 

그렇고 본즉 정방이 군사는 공주로 가서 찾아보니 과연 고마나루에 계심을 알고 잡아왔다。

그 후 왕과 태자 왕자 대신 등 93인과 백성 12,810인을 데리고 소정방이는 배를 타고 제 나라로

갔다。백제 백성은 머리를 부딪치며 우는 사람, 하늘을 우러러보고 긴 한숨을 짓는 사람, 모든

백성들이 넋을 잃고 말았다。

 

이같이 하여 백제 나라는 영원히 이 땅위에서 봄눈 스러지듯 사라지고 만 것 이었다。백제 서울

안에서는 피란민들이 차차 모여들자 나라가 없어진 것을 분히 여기고 다시 기회를 보아 일을

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부 촌사람들은 이만광이의 행위를 밉게 보고 그 놈을 잡아 때려죽이자하는 소리가 점점 높아

지며 한 사람 두 사람씩 만광이집으로 모이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수천 명이 모여들어 욕을 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 놈의 집에다가 불을 놓자는 사람도 있고 만광이를 때려죽이자는 사람 모두

만광이 미워하는 사람들이라 결국은 만광이를 죽이고 그 집에다가 불을 놓고 말았다。

 

그래도 분한 기운이 풀리지 아니하여 그 집터를 파서 없애기로 하고 여러 동리사람들이 괭이며

쇠스랑 등을 가지고와서 어제까지 있던 만광이 집터를 파서 오늘에는 못으로 변하여 버렸다。

 

그 후부터 이곳으로 지내는 사람은 나라에 충성을 다하지 않은 사람은 이같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후부터 이 못을 「맹괭이방죽」즉 만광이 못이라고 부른다 한다。

 

일천여년을 지낸 오늘날에 와서도 촌락 고로(古老 :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실물(물건을 잃어버림)

을 한 때에는 이곳에 가서 바라만보아도 도적놈을 안다고 일반이 알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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