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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화(인동초)의 전설

사비성의 구드래 나루건너 평화로운 두메산골 마을에 마음씨 곱고 부지런하며 효성이 지극한 부부가 의좋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근심걱정이 있게 마련인지 이들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항상 마음이 편치 않던 차에 꿈속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자식이 있을거라 했는데, 백발 노인의 현몽대로 잉태하여 출산을 해보니 쌍둥이 자매였다.
이들 부부는 자매의 이름을 "금화"와 "은화"라 하고 정성을 다하여 길렸다. 점차 자라면서 아름답기가 선녀같고 마음씨 곱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 마을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정다운 두 자매는 그림자처럼 같이 행동하며 늘쌍 "우리는 같은날 태어났으니 헤어지지 말고 오래오래 살다 같은 날 죽자"며 사이좋게 자라났다. 그런던 어느날 갑자기 언니인 금화가 원인 불명의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동생인 은화는 온 정성을 다하여 언니인 금화를 간호했지만 불행하게도 은화마저도 같은 병을 얻었다. 이들 자매는 "우리가 죽어서 약초가 되어 우리들 같이 병들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구하자"고 했다. 끝내 같은 날 죽은 금화와 은화가 묻힌 무덤가에서는 한 줄기 가녀린 덩굴식물이 자라더니 희고 노란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며 향기를 그윽하게 내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꽃을 두자매의 넋이라 여기며 두자매의 이름을 따 금은화(金銀花)라 하였다. 그 후 후세의 사람들은 겨울의 북풍한설에도 잎이 시들지 않고 떨어지지 않는다하여 "인동"이라 불리게 되었고 꽃은 해독, 해열 등 약용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 백제의 인동문화 ◎
백제시대에는 인동의 덩굴이 뻗어나가는 형상과 6월 백색으로 피어나 황금색으로 변하기까지 나타나는 형상을 본떠 왕관에는 금화장식으로 6품 이상의 신하들 관에는 은화로 장식하였으며 꽃의 모양을 도안화한 무늬들이 백제시대에 폭넓게 쓰여 백제문화를 인동문화, 인동을 백제의 국화로 상징 할 수 있게된 것이다. 따라서 백제시대의 유물에는 주로 꽃을 형상화한 문양이 대종을 이루고 있으며 대표적인 유물은 무령왕릉의 왕과 왕비의 금화장식, 백제금동대향로, 백제8문양전, 금동제광배, 벽돌와당류, 귀족의 은화관식 등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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