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마당


부여를 걷다. -현북1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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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앞에 서있는 비석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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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서 쉬고 계시는 할머님들.IMG_312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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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118.JPG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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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달리기 해도 될정도로 쭉 뻗어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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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블루스카이

2015.06.22 23:06

현북리의 마을유래는 아래와 같습니다.

백제 때에는 진악산현에 속했으며, 통일신라 후에는 석성현에 속했었다.
고려 때에는 석성현에 속했으며 조선시대 초기엔 석성현 북면의 지역이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석성군 북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노상리, 노화리, 월경리, 염창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조선시대에 현북면이 있었으므로 현북리라 하여 부여군 석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에 부여읍에 편입되었다.
면적은 5.32㎢에 가구수는 162호이며 인구수는 517명으로 거의 농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2000년 대규모 경지정리 사업으로 인하여 특용작물 재배면적이 확대되고 현북제방 보수공사로 매년 수해지역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현북리는 원래 석성현 북면지역으로, 현북 1리는 노상, 노상리 지역으로 희여티라 불리우며, 이곳은 산의 생김새가 군사요지로 백제때 기마병의 훈련장으로 사용됐다는 구전도 있으나 실증할 수 없고 사원지는 희어대라는 추정과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대석이 산재해 있다.
현북 2리는 월경, 나말 석성말의 3개 뜸으로 구성되었으며, 나말은 라씨들이 사는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말 도선대사(道詵大師)가 전국을 순회할 때 오석산하 남7리인 이곳에 운중반월(雲中半月)이라는 명당이 있다고 하였으며, 지명에 월경, 달아래들, 자무내 등이 있어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또한 충청남도 기념물 제34호로 지정된 백제 때의 절터인 임강사지(臨江寺址)가 있고 백제금동보살입상(百濟金銅菩薩立像)이 발견된 현북리폐사지(縣北里廢寺址) 등의 고적이 있다.

정보출처 : 부여읍 홈페이지

댓글

블루스카이

2015.06.22 23:08

마을마다 사라지지 않는 새마을사업 흔적이 있군요.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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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를 걷다. -용정리2구 下-

부여를 걷다. -용정리2구 上-

부여를 걷다. -가증리-

부여를 걷다. -염창 3구-

부여를 걷다. -현북2구-

부여를 걷다. -현북1구-

부여를 걷다. -염창2리-

부여를 걷다. -염창1리-

부여를 걷다. -자왕리-

부여를 걷다. -송간리-

부여를 걷다. -저석1리-

부여를 걷다. -송곡리-

부여를 걷다. -저석 2리-

부여를 걷다. -신정리-

부여를 걷다. -저석 3리-

부여를 걷다. -석목리-

부여를 걷다. -정동리-

부여를 걷다. -6월 중순의 궁남지-

부여를 걷다. -중정리 두번째-

부여를 걷다. -중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