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마당


부여를 걷다. -자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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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게였던 이곳은 주인이신분이 돌아가셔서 더이상 가게가 아니더군요. 5년전에 돌아가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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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으로 나가는 쪽에 있는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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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기보다는 동네 어머니와 담소를 더 즐겼습니다. 하하..(장가는 왜 안가냐..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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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 취해달라고 부탁하니 바로 내려서 저리 서있던 아이! 

 

롤링배너1번

 



댓글 (1)

블루스카이

2015.06.22 23:13

자왕리의 마을유래는 아래와 같습니다.

백제 때는 사비군에 속했으며 백제 멸망 후에는 부여군에, 고려 때는 한때 공주에 속하기도 하였다.
구전에 따르면 나당군이 사비성에 쳐들어왔을 때 의자왕(義慈王)이 주장산(珠藏山)을 넘어 도망갔다 하여 이곳 마을을 주자왕리(走自王里)라 하였다는 전설도 전한다.
그러나 주자왕리는 주장산 아래에 마을이 있으므로 그 산에 연유하여 내린 지명이 바른 해석이 된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부여현 몽도면의 지역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중기에 자왕리에 정착하는 금녕김씨 그리고 전주이씨의 정착으로 지역이 번성해가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부여군 몽도면의 지역으로서 주장산 아래가 되므로 주장왕이 또는 주장왕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송정리, 저채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자왕리라 해서 현내면에 편입되었다가 뒤에 면명 개칭에 따라 부여면 자왕리, 그리고 읍 승격에 따라 부여읍 자왕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마을입구에 마을이 생김으로 즉 먼저 마을이 있는데 또 생김으로 동구머리라 부르다가 변하여 도구머리, 주장산 아래 마을이 있으므로 주장, 주자왕이 등의 마을이 있다.
마을 중앙으로는 국도 40호선이 통과해 교통이 편리하며 마을 주민 대다수가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전형적인 농업이 주가 되는 마을이다.
리의 면적은 2.68㎢이며 가구수는 100호에 인구는 304명이다.
앞으로 백제 큰길이 자왕리를 경유하여 강가로 통과하게 되면 주장산 강변의 경치 좋은 곳이 되리라 본다.

정보출처 : 부여읍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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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를 걷다. -용정리2구 下-

부여를 걷다. -용정리2구 上-

부여를 걷다. -가증리-

부여를 걷다. -염창 3구-

부여를 걷다. -현북2구-

부여를 걷다. -현북1구-

부여를 걷다. -염창2리-

부여를 걷다. -염창1리-

부여를 걷다. -자왕리-

부여를 걷다. -송간리-

부여를 걷다. -저석1리-

부여를 걷다. -송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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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를 걷다. -중정리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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