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전자책 영농일지 펴낸 정화려씨(충북 단양)


만인에 농사비법 공개한 ‘스마트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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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9월17일. 올해는 정말 이상한 해입니다. 고라니들이 무를 뽑아 놓거나 무청을 뜯어먹기는 해도 무를 갉아먹는 일은 좀처럼 없는데 올해는 농사가 워낙 안되다 보니 이놈들도 먹을 것이 없나 봅니다. 무청을 다 뜯어먹고 무까지 먹고 갔네요.’

 웃음과 애잔함이 함께 묻어나는 이 일기는 충북 단양에서 밭농사를 짓는 정화려씨(48·어상천면 석교리)의 영농일지다. 그는 2000년, 서울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여덟살 딸내미 지민이가 흙을 벗 삼아 자라게 하고 싶었고 나름대로 푸성귀를 키워 본 경험도 있어 농사가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소일거리로 푸성귀를 키우는 것과 고추·마늘·잡곡 등 각종 밭작물을 5만여㎡(1만5,000여평)나 재배하는 건 천지 차이였다. 귀농 첫해엔 두릅 묘목 500만원어치가 모두 말라 죽는 등 시작부터 어려움에 부닥쳤다. 처음 1~2년은 마을 사람들에게 “오늘은 뭘하면 될까요?” 하고 물어물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고 40~50대 젊은 농부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며 마음의 문을 열어젖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씨가 주목한 것은 바로 영농일지였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수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처음엔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기 위해 글로만 쓰다가 2003년부터는 사진까지 찍었다. 자신이 밭에서 보낸 날들을 사진 한장에 글 한줄이라도 붙여 홈페이지에 꼬박꼬박 기록했다. 꼼꼼한 기록은 누구보다도 정씨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옛날엔 5월10일쯤이면 서리가 내리지 않았는데, 그것만 믿고 고추를 심었다가 12일에 서리가 내려서 고추가 죄다 얼어 죽은 일이 있었어요. 그 뒤로 ‘고추는 5월15일 이후에 심는다’는 원칙을 세웠죠.”

 2008년 8월엔 풀을 베려고 고추밭에 예초기를 들고 나섰다가 땅벌에 서른군데 넘게 쏘이기도 했다. 결국 소방관이 출동해서 벌집을 없애 줬고, 정씨는 이듬해 일지를 보고는 일찌감치 산재보험에 가입했다. 2004년에 단양군수 표창을 받고 2006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된 것도 모두 영농일지 덕분이었다. 그는 이렇게 8년간 정성들여 쓴 영농일지를 지난해 책으로 묶었다. 컴퓨터는 물론이고 스마트폰·태블릿PC 등 휴대용 전자단말기에서도 볼 수 있는 전자책(e-book)을 ePub파일과 PDF파일 두가지 형태로 만들었다. 인쇄 기획사를 운영하던 경험을 살려 종이책으로도 엮어 봤지만 잘 팔리지 않았기에 전자책은 무상배포하기로 결심했다. ‘나만의 지식’에서 ‘모두의 지식’으로 정보를 공개해 후배 귀농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운영하는 ‘유월농장’ 홈페이지(유월.kr)에 가면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젊은 도시 사람이 귀농해 유기농 농사를 지은 기록.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제가 농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가장 오래 농사를 기록한 스마트 농부’가 될 겁니다.”

 그리고 정씨는 투박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농민신문>에서 기자가 다녀갔습니다….’☎043-423-3133.

단양=김인경, 사진=김병진 기자 why@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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