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보부상들이 다닌 길을 걷다


아홉사리 길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미스터리 비석 가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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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사리 길 오직 한 사람씩 한 줄씩 걸어갈 수 없는 좁은 길이다. 옛 보부상들은 이 길로 홍산 장과 보령, 남포, 비인 장을 다녔다. ⓒ 오창경

 

세상에는 참 많은 길들이 있다. 아니 많은 길이 생기기도 했다. 제주도의 올레길 이후에 각 지자체마다 이름도 예쁘고 걷기에 좋은 길들을 발굴해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요즘 둘레 길은 여가와 휴식을 위한 길이지만 옛날 보부상들에게는 생존과 삶의 애환이 서린 길이었다.

 

아홉사리 길은 충남 부여군 홍산면 토정리 톳골에서 옥산면과 보령군 미산면으로 넘어가는 천덕산의 아홉 개의 구비 길을 말한다. 천덕산 산 중턱을 실로 감아 놓은 것 같은 길이 나 있고 그 구비를 세어보면 정확하게 아홉 개이다. 

 

그 아홉 사리 길은 전국에서 무슨무슨  길이 유행하기 전부터 있어왔던 길이다. 이제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가지 않는 길'이다. 신작로가 생기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에게도, 보부상들에도 잊힌 길이 된 '아홉 사리 길'을 찾아갔다. 그 길을 걸으며 그 옛날 홍산 보부상들의 삶을 따라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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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사리 길의 세 번째 구비 한 쪽은 산 다른 한쪽은 낭떠러지인 길. 이런 길에서 마주 오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양보하는 사인을 주고 받아야 지날 수 있다. ⓒ 오창경


홍산 장이 서는 날을 위해 보부상들은 보령, 비인, 남포 등에서 많이 나는 해산물들과 남포 벼루, 고객들이 주문한 물건들을 미리 사놓았을 것이다. 보령 장날에 팔 저포(모시)는 홍산 장날에 받아 놓았다가 보령 장날 새벽이나 그 전날 길을 나섰겠다. 그 것들을 지게에 지고 또는 등짐으로 지고 패랭이를 쓰고 촉작대를 짚으며 천덕산 아홉사리 길에 올랐을 것이다. 

 

보부상들은 산 굽이굽이 아홉 구비를 돌아가는 길을 생의 아홉 번 고비를 넘어가듯이 걸어갔다. 길은 오직 그 아홉 사리 길 밖에 없었고 그 길이 지름길이었다. 손수레 하나도 다닐 수 없이 오직 사람의 두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씩만 떼면서 걸어가야 다닐 수 있는 길이 아홉 사리 길이었다. 마주 오는 사람들을 만나면 옆으로 서서 서로 양보하며 지나야 할만 큼 좁은 길이다.

 

삶의 무게만큼 가장 무거운 등짐이 또 어디 있으랴. 보부상들의 생의 무게로 다져진 아홉 사리 길은 그냥 담담하게 걷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실제로 등짐과 봇짐을 이고 지고 걷지는 않아도 마음의 짐이라도 안고 걸어야 보부상들의 애환과 삶을 이해할 것 같은 길이 가는 실같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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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사리 길의 다섯 번째 구비의 마당 바위와 가교비 자연석에 글씨를 새긴 가교비. 비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연스럽지만 4행 30자 가량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 오창경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등 세월의 격동기를 겪으며 한 세기를 지나는 동안 보부상들의 행보도 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을 것이다. 보부상의 마지막 도집사였던 김대연 (83세) 옹에 의하면 공문제(보부상 총회)를 지낼 때 홍산 장에서 서천 판교까지 트럭을 타고 갔다고 한다. 그 시기가 1956년쯤이니 이미 그 무렵부터 아홉 사리 길은 보부상이나 사람들에게 잊혀가는 길이 되고 있었을 것이다. 

 

천덕산의 다섯 번째 구비에는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는 넓은 마당 바위가 있고 가교비도 있다. 마당 바위는 한바탕 공연을 펼칠 수도 있을 만큼 넓기도 하다. 아마도 옛 보부상들은 아홉 사리 구비 길의 한 가운데인 마당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세상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정보도 교환했을 것이다. 

 

흥이 있는 사람은 노래도 한 자락 부르고 춤도 추며 고단 한 길 위의 인생에서 한시름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는 곳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이런 곳에는 휴게소 역할을 하는 주막이나 정자도 있었을 것이다. 목을 축이는 샘물도 솟아나는 곳이 있을 법하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마당 바위 한 쪽에는 자연 그대로의 작은 바위에 가교비(架橋碑)라는 제목이 붙은 비문을 적어 놓은 비석이 있다. 한자로 씌여진 비문의 내용은 '보령 도흥사 경특 스님이 동네 유지였던 유금후라는 분에게 시주를 받아서 다리를 놓았다. 그 다리 위에서 구름과 벗하여 노니나니 지나는 나그네여, 잠시 봇짐을 내려놓고 그 맛을 누리시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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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사리 길의 마지막 구비 동네 사람들에게도 잊혀진 길이 된 아홉사리 길. ⓒ 오창경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군청에서 세운 가교비에 대한 간판의 내용은 형식적이기 그지없지만 옛날 경특 스님이 세운 가교비의 내용은 풍류가 넘친다. 아홉 사리 길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다리를 놓을 만한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다리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아홉 사리 길 아래 동네의 옛날 지명이 '가르내' 라고 하는 것을 보면 가교비(架橋碑)의 한자 架의 '시렁' 과 '건너 가로지르다' 뜻 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가교비에 대한 해석을 멋대로 해보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골짜뿐인 산중턱에 있을 리 없는 다리에 가교(架橋)라고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골짜기 사이를 이어주는 공중 다리 즉 구름다리를 놓아서 먼 길을 줄여서 다니고 싶은 바람을 비석으로 남겨 놓은 것은 아닐까? '사랑의 가교(架橋)' 라는 말에서 보면 실제 교각이 아니라 남녀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런 뜻에서 홍산과 보령 등 저산팔읍의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에 세워진 가교비는 지역 정서를 극복하고 양보하고 화합하며 지나다니자는 뜻을 새겨놓은 것이 아닐까. 한쪽은 낭떠러지인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그 길에서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들끼리 만나게 됐을 때, 초래하게 되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 비석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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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산 낫고개 홍산면에서 아홉사리 길을 1.1 Km 정도 걸어서 나오면 이 길을 만난다. 보부상들은 이 고개를 넘어 보령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 오창경

 

아홉 구비 구절양장 같은 길을 걷고 또 걷고 계곡을 돌아 돌아가는 길을 걸으며 보부상들은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기는 일만 생각했을까? 길을 걷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빠른 세상을 살고 있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보부상 옛길 '아홉사리 길'은 느림과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타박타박 걸어와 길을 내고 경제의 밑거름을 다져왔던 보부상들의 탄탄한 행보가 이제는 사이버 공간에 재현되고 있다. 인터넷,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등에 길을 내고 상업 활동을 하는 디지털 보부상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홍산 장날에는 이제 썩은 생선을 팔지 않지만 사이버 공간에 장터를 마련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홍산 보부상의 영화를 계승하는 디지털 보부상들이 홍산으로 많이 몰려오고 있다. 아홉 사리 길  한 가운데에 가교비만 있고 다리는 없는 가교는 아마도 옛 보부상들과 디지털 보부상들을 연결해주는 사이버 다리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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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덕산 천덕산 중턱에 아홉사리 길이 있고 멀리서 세어보면 아홉개의 골짜기가 보인다. ⓒ 오창경

 

 

덧붙이는 글

본 글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오창경님께서 기고해 주신 글입니다.  본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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